KOVEA Brand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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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근 회장 인터뷰

코베아의 오늘과 미래

42

코베아 팩토리 방문기

STARTING FROM HERE

25

코베아의 대표 제품

EVOLUTION OF KOVEA

62

캠핑을 사랑하는 사람들

HAPPY 40th BIRTHDAY FOR KOVEA

76

코베아 앰배서더

내가 모험을 멈추지 않는 이유

15

김상현 대표 인터뷰

코베아의 새로운 해석,

아들이 쓰는 앞으로의 60년

48

코베아 피플

코베아와 함께하는 사람들

34

코베아의 테크놀로지

1982~2022

66

코베아 베스트셀링 아이템

CAR PLAY

80

코베아 제주 화보

INTO THE WILD

98

코베아의 새로운 브랜드

미래를 향한 캐스팅

18

기념비적 모멘트

KOVEA’S MONUMENT MOMENT

56

코베아의 핵심 가치

코베아의 자긍심, AS센터

38

코베아의 테크놀로지

SINGING IN THE RAIN

70

코베아 40주년 에디션 화보

NEW ERA OF KOVEA

90

해외에서 만난 코베아

ON THE ROAD

CONTENTS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면 포기를 해서는 안된다.

꾸준하게, 쉬지 말고, 시장에 접근해라.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이뤄 낼 수 있다.”

1949~2011

코베아 창업주 고(故) 김동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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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코베아의 창립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소감이나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30주년이 되던 해

에도 기업인들에게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느새 또 10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 이렇게 40

주년을 맞게 되니 감개무량하네요. 선대 회장님이 코베아를 설립하고, 아들이 그 뜻을 받들어 잘 이어가

는 데에 40주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선대 회장님께서도 분명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

기억에 남는 고(故) 김동숙 선대 회장님의 면모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오로지 성실함이 재산인 사람이었

어요. 어딜 가든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그 성실함이 사업을 하는 뿌리이자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

해요. ‘라떼’ 시절 얘기를 좀 하자면 홍은동 꼭대기에 살았었는데, 밤 12시 통행금지 시간이 가까워오면

어김없이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어요. 지금은 은행을 통해 대금이 들어오지만, 그 당시엔

영업 사원들이 직접 수금을 하러 다녔어요.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으면 남대문과 동대문 등 거래처에 수

금하러 갔다가 포장 일도 도와주고, 시장 일도 거들어주다 왔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라도 점수를 따야

수금하기가 조금이라도 수월한 시절이었죠. 매일 그렇게 애걸하다시피 해서 수금을 하고 밤늦게 들어왔

어요. 그리고 워낙 겉치레가 없던 사람이었어요. 죽기 전에 외제 차를 타봤을 정도로 굉장히 검소했고요.

한번은 세탁기를 새로 구입해야 해서 무슨 모델을 사겠다고 했더니 열 번 망가져도 국산 제품을 써야 우

리나라가 발전한다고 하더라고요. 제조업에 몸담고 있다 보니 국내 기술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국산에

대한 애정이 컸지요.

전후 100년도 안 된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만들고 기업을 일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

을 텐데요, 그래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코베아의 40년 시간이 더 궁금합니다. 1982년 사업을 시작했

을 당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그 당시 남편은 석유 버너 회사에서 근무를 했고, 산 사나이였어요. 가볍게

걷는 정도의 산행이 아니라 등산용 밧줄인 자일을 이용해 바위를 타는 수준이었죠. 그때 유럽 브랜드의

버너가 유명했는데, 그 가격이 보통 그의 월급 3분의 1과 맞먹을 정도였어요. 당시 월급이 19만원 정도였

는데 버너 한 대 값이 약 4만8,000원에서 5만원이었으니, 당시 산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그거 하나 갖는

게 로망이었어요. 그때 가스버너 시대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아이가 초등학생 때인가, 한번은 “당신이 살림을 맡아주면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무

슨 사업을 할 거냐고 그랬더니 처음에는 등산화를 팔아보고 싶다고 해서 차고에 잔뜩 쌓아놓은 적이 있

어요. 그런데 자기 적성에 안 맞았는지 금세 접더군요. 그러다 어느 날 가스버너를 가지고 와서는 방에서

몇 날 며칠 틀어박혀 연구하다가 생각해낸 첫 사업 아이템이 석유 버너 예열기였어요. 석유 버너 예열기

가 호응을 얻으면서 차차 가스버너 예열기를 만들었고, 이 아이템을 주력으로 약 10명의 직원을 두고 사

업을 시작했지요.

자연을 동경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앞선 기술로 기업의 건강한

성장을 이끌어온 강혜근 회장과 김상현 대표를 만났다. 업으로 이어진 어머니와

아들을 통해 코베아의 40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그려본다.

코베아의 오늘과 미래

강혜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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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전화기에서 휴대폰으로,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산업의 변화나 시장의 흐

름을 읽는 선구안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항상 이야기해요.

아들인 김 대표가 지난 10여 년간 현장에서 일에 대한 경험을 쌓고 기본기를 다진 것도 같은 이유고요.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사업이 날개를 달았어요. 그때 회장님은 파산 위기에 처한 물류센터를 매입

하려고 저를 데리고 다니셨는데, 저는 대체 작은 공장에 큰 물류센터가 왜 필요할까 좁은 생각을 했었죠.

아무튼 물류센터의 문도 못 열어본 채 외관만 보고서 매입을 했는데, 그때 물류센터를 미리 준비하지 않

았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회장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거죠.

창업 후 약 20년이 지나 사업이 자리를 잡았는데, 당시 코베아에는 어떤 제품군이 인기였나요? 단연 버

너류지요. 등산이나 캠핑에서는 1인이 혼자 할 때의 취사와 4인 가족이 함께할 때의 취사 도구가 다르고,

보통 찌개와 밥을 따로 해야 하니 버너가 두 대는 필요해요. 예전에는 근로자의 날 같은 때에 우리 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했어요. 현대나 기아 같은 큰 공장에서 많이 사용했죠. 제품 모델을 해마다 업그레이드하면

서 자연스럽게 취사용 제품군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이제 ‘집’만 있으면 되는 거였죠.

그래서 텐트를 만들기 시작했고, 매장이 확대되고 입소문이 나면서 코베아의 텐트는 날개를 달았어요.

물론 다른 해외 브랜드도 들어와 있긴 했지만 조금씩 수입만 하던 상황이었는데, 코베아는 텐트 제품군

을 갖추면서 자연스럽게 사업이 성장했어요. 그리고 당시 <1박 2일>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도 한몫했고

요. 수입 아웃도어 브랜드 틈새에서 코베아는 국내 브랜드로서 산악 장비를 제대로 선보여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고, 어차피 OEM 회사다 보니 가격을 합리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죠.

코베아 브랜드를 아우르는 레저 & 아웃도어 라이프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족이 모여 오

붓한 시간을 보내면서 대화도 늘고,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레저 & 아웃도어 라이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집 안에서는 아무래도 식구들끼리 부대끼기 쉽고 아이들을 케어하다

보면 짜증 나고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가서는 그런 일이 훨씬 줄어들죠. 내 가족 또는 가까

운 지인들과 함께하며 자연 안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는 레저 & 아웃도어 인구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그

문화도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베아는 AS센터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들었어요. 코베아를 캠핑 분야에서 글로벌 대기

업 못지않다며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죠. 자재에도 기한이

있어서 10~20년씩 보유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데, 저희는 어떻게든 고쳐서 쓸 수 있게 해요. 부품이 없

으면 회사 전시실에 있는 텐트 스킨을 바꿔서라도 수선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어

려운 시절에 고가의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다 보니 그걸 구입해 사용해주시는 고객들이 너무 감사해서 전

부 무상으로 수리를 해드렸어요. 지금도 선대 회장님 대에 판매했던 제품을 수리하러 오시는 고객이 있으

니 참 감사한 일이죠.

오랜 시간 코베아를 함께 만들어온 직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코베아와 40년을 쭉 함께한 사람

들이 현재 직원의 3분의 1 정도 되는 것 같고, 절반 이상이 10~20년 근속한 직원들이에요. 저는 항상 그

들을 직원이 아닌 식구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가장 중요하며, 그래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연차나 직급을 떠나서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회사

가 되길 바랍니다.

코베아가 어떤 브랜드, 어떤 회사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회사가 잘되니까 회사를 팔라는 제안을 몇 번

받은 적이 있는데, 직접 터를 닦아 집을 지은 사람과 들어와서 사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어요. 저희는 모든

것을 손수 일구었고, 코베아의 곳곳에 선대 회장님의 혼이 깃들어 있어요. 아들이 어느 기사에 100년 가

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들이 나이가 서른다섯이 채 안 됐었는데, 참 잘했다고

말해줬지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표님께서 바라본 코베아의 40주년이 궁금합니다. 저희가 한때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적이 있어요. 개

인적으로도 계기가 필요했지요. 제가 ‘비젼코베아’를 맡은 지 2년이 조금 넘었는데, 스스로도 만족할 만

한 성과를 내고 싶었고요. 창립 40주년을 맞아 코베아와 비젼코베아를 통합하고 새로운 직원들도 합류

하면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시기인 것은 분명해요. 코베아가 1982년생이잖아요. 제가 1979

년생인데, 살아온 인생의 반을 저와 형제처럼 자라온 회사이기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지금 회장직을

맡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비즈니스에 합류하신 것이 언제인가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에 2000년부터 방위산

업체로 근무했어요.(웃음) 그때가 20대 초 · 중반이었고 나름 큰 포부나 꿈을 가지고 회사에 와서 일했는

데, 막상 부딪혀보니 현실은 좀 달랐지요. 제게 주어진 임무는 생산직이었고, 당시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생

산량을 많이 뽑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생산 직군에 계신 분들은 대체로 굉장히 부지런한데, 육

체적으로 힘들 텐데도 본인 일을 다 끝낸 다음에는 주변을 살펴 다른 일을 찾아 도와주었지요. 제가 좀 내

성적인 편이라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옆에서 보고 배우며 일을 익숙하게 해내면

서 예쁨도 좀 받고, 단순 업무지만 조금씩 노하우가 쌓이면서 차근차근 발전하고 향상되는 기쁨을 알게

되었죠.

생산 현장에서의 경험이 지금 대표님의 경영 방식에 초석이 되었을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는 항상 매사

에 바닥부터 다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시 생산 현장에서 국민 버너로 불리던 9703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생산하고 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는데, 대표가 되고 보니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다

가오더라고요.

선대 회장님은 어떤 아버지이셨나요? 어머니는 제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자주 말씀하세요. 성품은

무뚝뚝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분이셨는데,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무척 바쁘시기도

했지만, 제가 부모님께 그리 살가운 아들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제

가 통한다는 느낌은 늘 있었어요. 특히 아들에 대한 믿음을 항상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선대 회장님이 계실 때부터 꾸준히 이어오는 코베아만의 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처음부터 끝

까지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 감동을 전하는 것. 그게 코베아만의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성과를 좇다 보면 그 답을 너무 멀리서 찾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단순하지만 시간이 지나

도 변하지 않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꼽자면 아버지는 정말 자연을 사랑하는

김상현 대표

코베아의 새로운 해석,

아들이 쓰는 앞으로의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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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셨고, 저 역시 힘들면 늘 산을 찾았어요. 산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 지점이 코베

아 정신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베아 제품 중 처음 사용해본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생 시절 보이스카우트

활동에 챙겨 간 조그만 버너. 그보다 더 어릴 적에 아버지를 따라 낚시도 가고 산이나 바다에 가서 야영하

던 기억이 있는데, 자연스럽게 코베아 제품을 사용했어요. 사람들은 흔히 뭐든 하나를 좋아했다가 금방

식는 경향이 있는데요, 레저 & 아웃도어 역시 고객 관점에서 더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좋

겠다고 생각해요. 코베아를 통해 그런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요.

코베아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비결로 좋은 품질과 고객 감동이라고 언급하셨는데, 요즘 젊은 고객들에

게 어필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베아는 그동안 기존 제품군을 완전히 새롭게 리

뉴얼하는 등의 시도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좀 올드하다는 시장의 평가가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

는 가족 단위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1인 캠핑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관련 문화나 라이프스

타일도 많이 달라지는 추세입니다. 코베아의 기존 타깃층이 40~50대이긴 하지만, 요즘 40~50대는 굉

장히 젊고 트렌디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민감하게 대응하려고 합니다. 더 재미있는 방향으로 나아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브랜드에 ‘재미’라는 요소를 더해야 한다는 생각이시군요. 요즘 소비자들은 브랜드나 기업에 요구하는

기준이 굉장히 높아요. 예전에는 저희 사업이 트렌드에 민감한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제는 트렌디한 레저 & 아웃도어 시장이 굉장히 커졌어요. 그런 흐름에 발맞춰 저희도 디자인 강화와 고객

소통 쪽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특히 컬러 부분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고, 2년 전에는 MZ세대를

위한 라이브 쇼핑을 시작했어요. SNS에 친화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강조한 제품을 출시하기도 하고, 브랜

드 스토어를 열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새로운 고객층이 생겨났어요. 코로나19로 국내 산이나 바다를 찾

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저희 생산 라인은 거의 쉬는 날이 없었어요. 저희가 직접 제조를 하니 어느 정도 대

응할 수 있었지요.(웃음)

코베아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품목이 낚시용품이잖아요. 이에 대한 계획과 비전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

립니다. 아버지와 쌓은 추억에서도 언급했지만, 낚시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다루고 싶던 분야였어요. 낚시

가 아웃도어 라이프에 더 다양한 액티비티와 추억을 더해줄 거라는 기대로 준비를 시작했지요. 전문가용

배스 낚싯대를 시작으로 단계별로 준비하고 있어요. 도심에서 할 수 있는 송어 낚싯대를 곧 출시하는데,

그다음은 겨울의 얼음낚시와 바다낚시로 제품군을 확장해나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국내 낚시용

품 시장은 일본 제품이 대다수 점유하고 있는데, 코베아가 토종 브랜드로서 제품 개발부터 준비하고 있으

니 낚시업계에서는 상당히 반기는 상황입니다.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코베아는 100년 가는 브랜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60년

을 위해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시나요? 처음에는 독보적인 시간과 가치를 지닌 명품 브랜드로 포지셔

닝하고 싶어서 좀 과하게 투자를 해보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명품이라는 것은 우리가 판단하는 게 아

니라 시간을 두고 소비자들의 평가가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잖아요. 40주년이 아니면 이걸 언제 해보겠

느냐며 여러 가지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려면 그동안 코베아가 걸어온 길과 그 시

간을 잘 정리하고 아카이빙화해서 코베아의 정신을 더 많은 이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코베아 브랜드 북을 만드는 작업은 선대부터 이어온 정신과 앞으로의 비전을 세우는 데 중

요한 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곧 코베아의 유산이 될 테니까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은 항상 변함없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보태자면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물건만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만들고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 다양한 경험

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를 지금의 코베아가 존재하게 해준 임직원 여러분과

코베아를 아껴주시는 모든 고객분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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